한국의 여성리더(선덕여왕(?~647))
선덕 여왕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도자였다.
한국 역사에는 총 네명의 여성 지도자가 있었는데 신라의 선덕여왕, 진덕여왕, 진성여왕
그리고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이 그들이었다.
신라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세 명의 딸이 있었다.
신라는 혈통을 매우 중요시 여기는 사회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가문에서 다음 왕이 나오길 바랐고
자신의 첫째 딸을 다음 왕으로 선택했다. 그녀가 바로 선덕여왕이었다.
선덕여왕은 즉위 초창기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실제로 그녀가 왕위에 오르고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백성들에게 1년간 세금을 면제해 주는 일이었다.
신라는 세금을 주로 곡물로 거두어 들였었는데 토지 생산성이 좋지 않았던 그 시기에 백성들은 세금을 상당히
부담스럽게 생각했었다.
그녀는 신라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진흥왕, 진평왕 다음으로 왕이 되었기 때문에
높아진 국력을 바탕으로 이러한 정치를 할 수 있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국제 정세는 그녀가 원하는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 당시 한반도는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고구려와 백제가 동맹을 맺고 신라를 공격했었기 때문이다.
고구려는 중국의 수나라, 당나라와 전쟁을 하느라 신라를 강하게 공격하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백제는 달랐다. 백제의 의자왕은 신라를 멸망시킬 기세로 공격했고 그는 신라의 40여개 성을 빼았는 등
신라에 큰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김유신 장군을 전장에 내보내어 적군을 방어하게 하고 김춘추를 외교 활동에 활용하며 이러한 국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선덕여왕은 고구려와 백제를 견제하기 위해 중국의 당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는 한편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해
불교 사찰을 건립했다.
특히 그녀가 신라 주변 9국가들을 제압하겠다는 의미로 세운 황룡사 9층 목탑은 현재 아파트 30층 높이에 해당할 정도로 거대했고 그 당시 나무로 지어진 가장 큰 건물이었다고 한다.
선덕여왕의 말년에는 오랜 전쟁으로 인해 왕권과 국력이 약해졌고 그 틈을 타 큰 반란이 일어났었다.
귀족이었던 비담과 염종이 선덕여왕을 죽이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던 것이었다.
반란을 일으킨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었으나 여자가 왕이되어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는 것과 불교 사찰들을 건립해
국고를 탕진했다는 것이 그들이 내세운 명분이었다.
그들이 일으킨 반란은 김유신과 김춘추의 제압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나이가 많았던 선덕여왕은 반란이 완전히 진압되기 전에 병으로 죽었고 선덕여왕 다음왕인 진덕여왕이 비담과 함께 반란을 일으킨 이들을 처벌했다.
반란을 일으킨 자들의 9촌 친척들까지 모두 처형시켰다고 전해진다. (그 당시에는 연좌제가 존재했었다.)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신라를 다스렸던 선덕여왕에 대해 국난을 잘 극복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 한편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전 왕들에 비해 신라를 나약하게 만들었다는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