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 연합군 : 가미카제 어원
고려는 몽골과 23년 동안의 전쟁을 했고 결국 고려 원종은 항복을 선언하기 위해 원나라로 갔다. 그 당시 원나라는 쿠빌라이 칸과 그의 동생 아릭부카가 왕이 되기 위해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 원종은 둘 중 쿠빌라이 칸에게 가서 항복했다. 쿠빌라이 칸은 고구려의 후손들이 자신을 왕위 계승의 후계자로 인정한 것을 매우 기뻐했고 이것을 널리 알렸다. 그것은 쿠빌라이 칸이 왕위를 계승할 적임자라는 것을 증명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아틸라가 5세기에 서양을 지배했다면, 5세기 동양은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고구려의 후예들이 자신을 인정해 주니 그가 크게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쿠빌라이 칸은 그의 동생을 물리치고 왕위에 오를 수 있었고 그는 고려 원종에게 감사를 표한 다음 고려 왕과 몽골의 공주가 혼인하는 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때까지 몽골의 공주는 오직 몽골 혈통과만 결혼할 수 있었는데 고려 왕족이 최초로 그 전통을 깬 것이었다. 이후 원나라의 왕과 고려의 왕은 장인과 사위가 되었다.
이후 쿠빌라이 칸은 강력한 고려 해군을 이용하여 일본을 점령하기로 결심한다. 그 당시에 고려의 선박은 아라비아 반도까지 무역을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성능을 자랑했었다. 고려-몽골 연합군(여몽 연합군)은 일본을 총 두 번 공격했다.
1274년 1차 공격 때는 일본 규슈를 초토화시켰으나 태풍으로 인해 많은 배와 군사를 잃고 돌아왔다. 1281년 두 번째 공격 때는 일본 본토에 도착하기도 전에 수천 척의 배가 태풍에 매몰되었다. 일본인들은 신이 그들을 보호한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태풍을 가미카제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가미는 신을, 가제는 바람을 의미한다. 즉, 신의 바람)
시간이 흘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이 되자 일본은 가미카제 특공대를 결성했다. 그것은 일본의 전투기 조종사가 폭탄이 가득 찬 비행기를 연합군의 함대로 돌진하는 자살 공격이었다. 즉, 신의 바람을 타고 날아가 연합군을 물리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일본 제국은 미국의 두 번의 원자 폭탄 공격으로 1945년에 멸망하고 이러한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