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과 고려의 비밀 :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
1333년 교황 요한 22세가 고려 27대 충숙왕에게 보낸 외교 문서의 내용이 확인되었다.
바티칸 비밀 수장고에서 이 외교 문서의 필사본이 소장되고 있었다.
이 편지는 라틴어로 쓰여져있었고 "존경하는 고려인들의 국왕께"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왕께서 귀하의 왕국에 머무는 옛 그리스도인들과 새 그리스도인들을 인간미 넘치는 친절로 받아주시고, 온정이 넘치는 은혜로 그들을 보살펴 주셨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습니다."라는 내용과 함께 그리스도인에 대한 호의를 요청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700여 년 전, 고려와 바티칸 사이에 외교문서가 오가고 사제들이 한반도에 왕래하며 그리스도 신앙을 전파했다는 사실이 공식 문서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이 편지는 다큐멘터리 <금속활자의 비밀들> 제작팀이 동양의 금속 활자가 유럽으로 흘러간 흔적을 찾던 중, 바티칸의 비밀문서 수장고에서 확인한 것이었다. 다큐멘터리팀이 이 외교문서에 주목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몽골은 1231년부터 28년 동안 고려를 9차례 침입했다.
고려인 20만명 이상이 몽골에 노예로 잡혀갔다. 온 국토가 불바다가 되었고
많은 목조 건물이 불에 탔다. 고려인들은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길 바랐다. 고려인들은 목판에 부처님의 말씀을 새겼다. 그리고 그 목판으로 언제든지 부처님의 말씀을 종이에 찍어낼 수 있도록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목판은 모두 81258장이나 되었다. 이 목판에는 8만 4천가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8만 4천가지의 부처님의 말씀이 수록되어 있다. 이 목판은 아직까지 온전히 보관되어있다. 이처럼 한국은 오래전부터 인쇄술이 발달한 나라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통일 신라시대 만들어진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1996년 10월 14일 경주 불국사 석가탑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제작 연대는 704년 이라고 한다. 이것은 불교식 기도문이었다. 이처럼 한국은 아주 오래전부터 효율적으로 기록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지금까지 목판 인쇄를 봤으니 이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인쇄를 알아보자. 금속 인쇄를 하기 위해서는 금속 활자가 필요하다.
금속활자란 금속 조각 하나 하나에 알파벳을 새겨 넣은 것을 말한다. 각각의 금속 활자를 책의 내용대로 배열한 뒤 틀에 넣어 고정시킨 다음 찍어내면 순식간에 여러권의 책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금속 활자들은 재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금속 활자의 배열만 바꾸면 책의 다른 부분도 찍어낼 수 있었다. 금속 활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교한 합금 기술이 필요하고 한다.
1454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만들기 이전에 책은 소수 지배 계층의 전유물이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양피지 등의 가죽에 사람이 직접 필사하여 책을 만들었는데 한 사람이 성서 한 권을 만드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한다. 유럽 전체로 볼 때 2개월 동안 성서 1만권이 생산될 수 있었는데 구텐베르크의 발명 이후 1주일 만에 성서 5백만권이 만들어 질 수 있었다. 이것은 정보 확산의 대폭발로 이어졌고 그의 발명은 근대 사회의 탄생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찍어낸 책은 직지심체요절이다.
그것은 1377년 고려에서 만들어 졌고 불교의 가르침을 깨닫는데 필요한 내용이 인쇄되어 있다. 이 책은 조선시대 때 프랑스인에게 의해 반출되어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있다. 이 책은 2001년 세계 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2005년 서울 디지털 포럼에서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한 기조연설이다.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할 때 교황 사절단에게 도움을 받았는데 사절단에는 구텐베르크의 친구가 있어 한국을 방문하고 인쇄 기술과 관련한 기록을 가져왔다." 그는 스위스를 방문했을 때 구텐베르크의 친구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추기경으로 예상되는 인물이 쓴 편지를 봤는데 이런 내용이 들어있었다고 했다. 이 편지는 스위스 바질의 인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문서들 중 하나였다. 실제로 로마 교황청에는 니콜라우스 쿠자누스가 <42행 성서>를 인쇄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 사실들을 종합해 볼 때 고려에서 발명된 금속활자가 고려와 교황청의 활발했던 교류를 통해 서양으로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게되었다.
다음편에는 교황청에서 고려까지 사절단을 보냈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