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기본

고구려 : 소수림왕, 광개토대왕과 일본,가야,숙신,거란

King Attila 2021. 6. 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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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림왕]
고국원왕의 맏아들이자 제17대 왕인 소수림왕은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전진과 교류하여 한국 최초로 불교와 도교등을 도입했다. 전진은 중국 5호 16국 시기 티베트계 저족이 세운 국가였다. 그리고 소수림왕은 한국 최초의 교육기관인 태학을 설립하여 유교 교육을 하고 인재를 육성해 관리를 뽑았다. 또 소수림왕은 율령을 반포하여 고구려를 중앙집권국가로 완성하였다. 소수림왕이 닦아놓은 이러한 제도들을 바탕으로 후임인 고담덕과 장수왕이 강력한 국력을 달성하고 정복전쟁을 펼칠 수 있게 된다.

[광개토대왕의 백제 정벌]
소수림왕의 손자인 고담덕은 동아시아 최고의 정복자였다. 광개토대왕은 고담덕이 죽고 난 뒤 붙여진 이름이다. 391년, 광개토대왕은 17살에 나이에 왕위에 올랐고 정복활동에 나섰다. 392년 7월, 그의 나이 18살이던 때 군사 4만 명을 이끌고 백제 북쪽 변경을 침략하여 10여 개 성을 함락시켰고 그해 10월에 백제 북방의 요충지인 관미성을 함락시켰다. 395년에는 영산강에서 백제군 8000여 명을 생포하거나 죽인다. 396년, 고구려는 대대적으로 백제를 공격하여 58개 성, 700여 개 도시를 점령하고 백제의 수도인 위례성을 포위하였다. 이때 백제 아신왕으로부터 '영원한 노객(奴客)이 되겠다.'는 항복을 받고 아신왕의 동생과 백제의 대신 10명을 인질로 잡고 백제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광개토대왕의 북방 유목민족 정벌]
378년, 소수림왕 때 거란족은 고구려에 침입해 1만 여 명의 백성들을 잡아갔었다.
392년 광개토대왕은 거란을 정벌하여 빼았겼던 백성들을 되찾아 온다. 그리고 395년, 다시 거란족을 정벌하여 복속시키고 많은 소, 말, 양떼들을 약탈했다. 광개토대왕은 398년, 숙신을 정벌하여 동북 국경 지대를 평정했다. 

[광개토대왕의 일본, 백제, 가야 정벌]
백제와 왜가 신라를 공격했을 때 신라는 평양으로 사신을 보내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서기 400년, 광개토대왕은 신라에 5만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왜군을 물리쳤다. 이때 왜군은 금관가야까지 퇴각하였고, 고구려군은 금관가야 지역까지 쫓아가 왜군을 격퇴시킨다. 이때 고구려는 금관가야까지도 함께 정벌했는데 그 이후 금관가야의 세력이 급속도로 약해져, 금관가야가 주도하던 전기 가야 연맹이 붕괴하게 되었다. 이후 가야는 대가야가 주도하는 후기 가야 연맹이 시작되게 된다. 고구려군은 백여 년 동안 신라 땅에 머물려 신라에 내정간섭을 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신라는 고구려의 보호국이 된다.

[거란]
선비에서 분화되어 4세기에 등장했으며 내몽골 지역을 기반으로 살아가던 민족이었다. 10세기, 요나라를 세워 랴오둥과 중국 허베이성 일대, 몽골 지역을 모두 정복하고 동북아시아 패자로 군림하며 전성기를 맞이했다.
홍콩의 항공사였던 캐세이퍼시픽 항공(國泰航空有限公司, Cathay Pacific Airways Ltd.)의 캐세이(Cathay)는 서양에서 중국을 뜻하는 단어로서 거란(Khitan)에서 비롯되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 북중국을 카타이(Catai)라고 불렀는데 이것 또한 거란에서 나온 단어였다.

[숙신]
고대 동아시아에 살았던 퉁구스계 민족. 숙신은 나중에 여진으로 이름을 바꾸고, 여진족들은 훗날 중국 최후의 통일 왕조인 청나라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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