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와 문화

파란 눈의 박연(벨테브레이)

King Attila 2021. 5. 2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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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7년, 벨테브레이는 네덜란드에서 일본으로 가는 도중 표류하여 제주도에 상륙했다.
조선은 외국인 표류자를 발견했을 때 그 표류자를 명나라나 일본을 거쳐 본국에 귀순시켰었다. 그러나 당시 명나라가 청나라와 싸우는 등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그는 일본으로 보내졌지만, 일본은 그가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그를 거부했다.
당시 일본은 기독교를 배척하는 정책을 펴고 있었다. 결국 조선은 그의 송환을 포기 했고 그에게 무관직을 주며 대포를 만드는 일을 시켰다. 그는 박연이라는 이름을 받고 조선 생활에 적응해 아내를 만나 딸과 아들을 낳았다.

1636년 12월 겨울에 조선에서 큰 전쟁이 일어났다. 
청나라 황제는 12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을 공격했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조선을 지키기 위해 청나라 군대와 싸웠다. 
그당시 전쟁은 칼로 살을 자르고 활로 사람을 꿰는 살육전이었다. 
그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그와 함께 온 두 명의 네덜란드 동료가 죽었다. 
그는 매우 슬퍼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에게 위로를 받고 버틸 수 있었다.

그는 제주도에 같은 네덜란드에서 온 하멜이 표류하게 되자 통역하는 일을 맡게되었다. 하멜은 박연에게 함께 조선을 탈출하자고 말했지만 박연은 거절했다. 
박연은 하멜에게 아내와 아이들을 남겨두고 도망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연은 하멜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온 소매가 다 젖도록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후, 하멜은 조선에서 탈출하여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로 돌아왔고 '하멜 표류기'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을 통해 박연의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박연의 이야기는 현재에도 "파란 눈의 박연"이라는 뮤지컬에서 공연되고 있다.

박연은 원산 박씨 가문의 시조가 되고 그와 함께 온 그의 친구는 병영 남씨의 시조가 되었다. 한국은 오래전부터 귀화한 외국인에게 새로운 성을 주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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